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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9
야호^ N 번째 행마다 빈 행 넣는 거 찾았다!!!
2024-04-27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TV 리모컨이 꼼짝도 안 했을 때-
2024-04-27
핸드폰에 노래 올릴 때 'Rar 형식'으로 압축해도 'Zip 형식'에서처럼 그냥 풀릴까?
2024-04-25
지닌 노래 오른쪽으로 그 노래 부르는 가수 이름을 모두 붙이려니까 고생되네^
2024-04-21
저 많은 노래 중에 '부산 갈매기'가 없다니!!!
2024-04-15
조수원 열사 그 이름이 보인다!!!
2024-04-12
잃어버린 사진 한두 장을 찾아내려고-
2024-04-10
헉^ 아까 업데이트했는데 왜 또 이게 뜨는 거야!!!
2024-04-09
남아도는 플러그 모두를 잘라 빈 콘센트에 꿰맞추려다가-
2024-04-07
누군가의 사이트에서 느끼는 따사로움♧♥♣
2024-03-13
이 글을 다 쓰고 나니까 다시 허리가 뻐근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한숨 들고 났더니 아팠던 자리가 낫는 게 아니라 다시 도졌다. 그래서 '허리에 힘 빡 주고서 앉았다 일어나기(좀 더 멀리 안전하게 걷기 위한 허리 강화 훈련이라고나 할까?)'를 예닐곱 번 한 뒤에 지갑 챙겨서 집을 나섰다. 그러고는 우리 아파트 상가 약국에 들러 '어제 허리를 뼜는데 밤새 죽을 뻔했다고' 약사한테 전했다. 했더니 이틀 치라며 끼니 뒤에 양쪽에서 한 알씩 꺼내 먹으란다. 약값으로는 6천 원이래. 만 원짜리 건네고 4천 원이 남잖아? 그 약국 바로 옆으로 떡집이 있거든. 나도 떡을 좋아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나보다 더해^ 그렇더라도 묻지 않고 무턱대고 사 갔다가는 태풍급 잔소리 폭격하시지. 그냥 폭격도 아니고 융단폭격이야. --------------------------------------------------------------- - 진주만 공습 - 1. 개요[편집] 진주만 공습(眞珠灣攻襲, The Attack on Pearl Harbor)[9]은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하와이 현지 시각) 일본 제국 해군의 항공모함 6척으로 편성된 연합함대가 미합중국 자치령 하와이 제도의 오아후섬[10] 북쪽 200마일 해상까지 접근, 400여 대의 일본 함재기가 미국 태평양 함대의 기지가 있는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사건이다. 2. 서론[편집] <중략> 중일전쟁으로 대표되는 일본 제국의 과격한 군사적 행동에 대해 미국은 일본 제국을 대상으로 한 경제제재로 석유 금수 조치와 철강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했으며, 이와 같은 미국의 일본 제재는 진주만 공습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다. 미국의 이 같은 금수 조치에 대한 대응으로 전쟁을 택한 일본 제국은 1941년 12월 7일 아침, 항공모함 6척을 동원한 대함대를 이끌고 하와이 진주만의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격하였으며 이는 곧 태평양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하략> ※ 위 '진주만 공습' 내용(요약본) 출처: 나무위키: 진주만 공습 https://namu.wiki/w/진주만%20공습 --------------------------------------------------------------- 했기에 어머님 의향 먼저 묻고 천 원짜리 그걸로 떡 사려고 떡국 앞을 지나다가 멈춰서서 그 안을 들여다보면서 우리 집으로 전화를 넣었지. 마침 동생 놈이 받더군! - 어머니 주무시냐! 그러면 내가 지금 떡집 앞에 있는데 떡 사도 될는지 물어봐라!!! - - ... - 그 사이에 떡집 아주머니가 나와서 웬일이냐고 묻는다. 이래저래 해서 그 대답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더니 고개 끄덕이시네. - 엄니가 좋아한다는 건 내 핑계고 실은 내가 먹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 - ... - - 형님! 사 오래요 - - 알았다!!! - 실은 지갑 속에 천 원짜리가 몇 장 더 있었다. 그것 저것을 다 보태니까 7천 원이네. 그 덤터기 다 꺼내서 아주머니한테 건네면서 내가 - 3천 원이라고 해도 난 믿을게요. 그놈 어치 떡 주세요! - 주섬주섬…. - 요렇게 하면 7천5백 원인데 그냥 7천 원에 가져가! - - 아이고 고맙습니다!!! - 1, 2초 뜸 들이더니 - - 가만 있어 봐! 이것들도 다 가져가!!! - 또 주섬주섬…. 대충 봐도 기존에 더하여 5, 6천 원어치는 더 주신다. 아주머님 / 죄송(?)하고 / 대단히 고맙습니다!!!
2024-03-11
아니 그래! '지구 온난화'보다는 '인위적 생태계 교란'이 맞았어! 오래되어 내가 그걸 깜빡 잊고 있었군! 20여 년 전 그때 고흥 고향 집 선착장에서 만났던 어르신과의 대화에서 '바다에 고기가 사라졌다'라는 그분 말씀에 내가 그랬었잖아? - '낙동강 하굿둑 탓'에 그럴 겁니다 - 그때는 그렇게 말씀드리고 인제 와서 왜 뱉었던 말 까먹었을까? 이 새벽에 '유튜브'보면서 그때를 떠올렸네. 또 인제 와서 4대강 축조도 떠오르네! 지난 정부 지지난 정부 쉽게 말해서 우리 국가(생태) 책임졌던 정부가 '산 생명'을 '화석화'했던 거로다! 이 슬픔을 어찌할거나~ - 어서 빨리 막았던 우리 땅 물길 모두 터줘라! - 유튜브 영상에서 어떤 아주머니 악다구니 쓰네^^^ - 바지락도 없고, 꼬막도 없고, 낙지도 없고, 고기도 없고, 게도 없고….- - https://youtu.be/s1HxE6zIVAc -
2024-02-27
아마도 고3이었을 성싶다. 학원으로는 나중에 합류한 반 친구 [안병위]가 있었고- 학교에서 엄청나게 뺀질뺀질했던 놈이 있었는데 그놈이 내 자취방으로 막무가내 들어온 통에 함께 합숙(?)했거든- 그놈하고 학교에서 3학년 졸업 전에 미리 나가는 실습(취업)생으로 맨 처음 직장에 나갔을 때 함께 그 공장에 다니기도 했었지. 이쪽(운암동, 신안동, 임동-)에서 광천 대교를 건넌 뒤 천변길 타고 쭉 내려가면 그 시절은 시내버스 17번 종점 부근이었고 지금에 와서는 유스퀘어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자리 부근에 폐지를 가공해서 다시 종이로 생산하는 폐지 재생 공장(삼성 제지)이 있었는데 우리 함께 다녔지. 온갖 폐지를 따뜻한 물로 다시 불려서 종이로 찍어내는 과정이 거기 들었는데 너무나도 먼지가 심했어. 그렇게 첫 직장을 다니다가 나는 좀 더 나은 공장으로 이직했는데 그 공장은 학교 책걸상 만드는 공장(광주광역시 본촌공단 / 한진공업사)이었거든. 내가 학교 다니는 동안은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그런 책걸상이었지. 철제 몸통에 매끈한 베이어 합판을 붙여 책상도 만들고 걸상도 만들었던 그런 공장이었거든. 그렇게 만든 물건들 조달청에 납품하면 조달청에서 각 학교에 배분했었나 보더라고- 나는 거기서 학교를 벗어나 처음으로 전기용접의 참맛을 익혔지. 일주일 중 토요일까지 엿새를 꼬박 일했던 그 시절 한 날에 문득 맨 처음 다녔던 '삼성 제지' 공장이 떠오르더군. - 거기 가서 내 월급 내 첫 월급 받아와야지! - 내 나름으로는 큰맘 먹고서 거길 찾아갔었지. - 응. 함께 다녔던 친구한테 갖다주라고 이미 줬는데….- 그렇게 내가 처음으로 공장 다녔던 몸값이 날아갔었지. 흐흐흐- ---------------------------------------- 단결투쟁가 백무산 작사 김호철 작곡 동트는 새벽 밝아오면 붉은 태양 솟아온다 피맺힌 가슴 분노가 되어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백골단 구사대 몰아쳐도 (꺾어) 꺾어버리고 하나되어 나간다 노동자는 노동자다 살아 움직이며 행동하는 진짜 노동자 너희는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 아아 우리의 길은 힘찬 단결투쟁 뿐이다 수천의 산맥 넘고넘어 (망치) 망치되어 (죽창) 죽창되어 적들의 총칼 가로막아도 우리는 기필코 가리라 거짓 선전 분열의 음모 (밟아) 밟아버리고 하나되어 나간다 노동자는 노동자다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 마침내 가리라 자유와 평등 해방의 깃발 들고 우리는 간다 아아 우리의 길은 힘찬 단결투쟁 뿐이다 원래 노동자시인 백무산이 쓴 시에 1989년에 깃발가, 파업가와 같은 전투적 투쟁가를 많이 작곡한 김호철이 곡을 붙인 것으로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의 노동자권리 향상, 그리고 인권향상을 위한 집회를 위한 노래로 만들어졌다. 당시 운동권에서 널리 퍼져있던 '전투적 조합주의'의 영향을 꽤 많이 받은 노래로 백골단, 구사대, 죽창 같은 전투적인 가사가 많이 쓰이는 것도 이때문이다. 물론 당시 백골단을 위시한 공권력이 워낙 노동자들을 짓밟아왔으니 그럴만도 하다. 이 노래의 영향은 매우 커서 90년대 중엽까지도 대학가에서는 전투적 조합주의와 노학연대활동이 주류가 되어왔다. 이를테면 대학생 활동가가 위장취업해서 공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세포조직을 만든다던가, 야학활동같은 것들이 있었다. 몇몇 학과들은 과가로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가령 중앙대학교 철학과의 과가가 이 단결투쟁가였다. 민중가요에 있어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 대중음악을 연구한 책들의 저항가요 파트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노래. 당시 백무산과 김호철 모두 공장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었고, 기존의 민중가요는 구전가요나 노가바(노래가사 바꿔부르기), 대학생들이 만든 노래가 주류였다. 노동자를 위해 노동자가 만든 최초의 민중가요. ※ 출처: https://blog.naver.com/adieulescons/223273698857 https://youtu.be/eEc6LFOI8KY ----------------------------------------
2024-02-10
내가 바꾸고자 했던 E 드라이브로 쓰는 하드디스크는 다른 드라이브의 하드디스크처럼 'SSD 방식'이 아니고 'HDD 방식'의 하드디스크였기에 이런 부류의 하드디스크가 가진 특성 탓에 접근할 때마다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난 것이다.
2024-02-03
처음에 제대로 판단했다면 괜히 만원에 가까운 비용 헛되이 날리지 않았을 것을…. 그것 반송하면 배송비를 내가 대야 하니까 결과적으로는 그 3분의 2도 못 찾겠더라. 이번에 공부한 샘치고 그냥 집안에 보관하자! 혹시 아나!!! 나중에 그 부속이 절실해질 수도 있을 텐데 그때 가선 아~ 나의 선견지명^!^